[인왕산에서] ‘주4일제’와 근로시간 양극화 문제 - 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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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주4일제’와 근로시간 양극화 문제 - 윤효원

() 530 10.22 14:25

 

‘주4일제’와 근로시간 양극화 문제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파편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임금과 소득의 양극화와 파편화가 있다. 둘째 고용 형태의 양극화와 파편화가 있다. 셋째 노동법과 사회법 적용에서의 양극화와 파편화가 있다. 넷째 근로시간의 양극화와 파편화가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즉 양극화와 파편화 문제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임금과 소득의 양극화와 파편화, 고용 형태의 양극화와 파편화, 그리고 법 적용의 양극화와 파편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근로시간(working time)의 양극화와 파편화 문제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근로시간은 노동문제(Labour Questions)의 출발점이고,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시장 상층만이 아니라 하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21세기 들어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근로시간 양극화의 구조적 원인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근로시간 양극화’(polarization of work hours)는 노동시장에서 근로시간이 점점 더 양극화되는 복잡한 현상이다. 이로 인해 앞에서 지적한대로 임금과 소득만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 고용 안정성, 그리고 법 적용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 현상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일하는 고임금 직업군과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일하지 못하는 저임금, 불안정한 직업군의 노동자들을 만들어낸다.

 

기술 발전, 특히 자동화와 디지털화는 고학력 직업과 저학력 직업 사이에 큰 격차를 만들고 있다. 고학력 노동자는 주로 기술, 금융, 전문 서비스와 같은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일한다. 반면, 저학력 직업은 자동화의 영향을 받아 풀타임 일자리 기회가 줄어들고, 노동자들은 파트타임이나 임시직으로 밀려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기업은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중간 기술 직업의 수요가 줄어들고 고학력-고임금 직업의 수요가 증가해 근로시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글로벌화로 기업들은 중간 임금을 받는 생산직을 더 저렴한 노동력을 가진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에게는 고학력 직업 또는 저임금 서비스 직업만 남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분열은 많은 노동자들을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근로시간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제로시간(zero-hour) 계약, 긱 경제(gig economy), 임시직 등 유연한 고용 형태의 증가로 많은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일부 노동자에게는 유연성이 이점을 제공할 수 있지만, 다수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근무일정과 불충분한 근로시간으로 이어져 생활 안정성이 떨어지고 있다.


근로시간 양극화는 소득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소득 노동자들은 보너스, 승진, 성과 기반 임금 구조에 의해 더 긴 시간을 일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저소득 노동자들은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파트타임 또는 불규칙한 일정에 의존하게 된다. 생활비가 높은 지역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 개의 파트타임 직업을 가져야 하며, 이는 근로시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제조업의 감소와 서비스 경제의 확대도 근로시간 양극화에 기여했다. 서비스 직종, 특히 유흥업, 소매업, 의료 서비스와 같은 분야는 불규칙하거나 파트타임 근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돌봄 직종, 예를 들어 보육 및 노인 돌봄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저임금, 파트타임 직종으로, 이들 노동자는 과도한 압박을 받게 된다.


근로시간 양극화의 결과


근로시간 양극화는 긴 시간을 일하는 고임금 직업군과 불충분한 시간을 일하는 저임금-불안정 직업군 간의 소득 격차를 더욱 벌리게 된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제한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파트타임이나 불규칙한 근무는 건강보험, 연금, 유급 휴가 등의 복지 혜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재정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사회적 보호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다.


긴 근로시간을 요구받는 고임금 직업군의 노동자들은 번아웃(burn-out), 스트레스, 불면증, 심혈관 문제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과도한 근로는 개인적인 관계에도 부담을 주어 전반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불완전 고용 상태의 노동자들은 불충분한 근로시간으로 인한 재정적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느낀다. 많은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더 많은 근로시간을 원하지만, 풀타임 일자리를 찾지 못하며, 이는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성들은 파트타임 근무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성별 임금 격차를 확대하고 여성의 경력발전 기회를 제한한다. 


결과적으로 근로시간 양극화는 학력이 높고 부유한 노동자들이 더 나은 경력 기회를 갖게 만드는 반면,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경우 불안정한 직업에 머물게 되어 사회적 계층화와 사회적 결속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주4일제’는 전체 노동시장의 요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시간의 양극화와 파편화 현상은 심각하다. 2023년 전체 노동시장의 주당 근로시간 평균은 38.4시간이다. 이를 상하로 나누면, 근로시간에서 고임금층이 평균을 상회했고 저임금층이 평균을 하회했다. 이러한 추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비교할 때도 확인된다.  


노동시장의 상층에 위치한 고학력-고소득 노동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을 상회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노동운동의 요구는 우선적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과 주 40시간의 준수여야 한다.


반면에 노동시장의 하층에 위치한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을 하회하고 있다. 시간당 임금 단가가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의 요구는 한 개의 일자리에서도 괜찮은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법정 근로시간에 맞게 근로시간을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현 시기 근로시간과 관련된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에 기반해야 한다. 노동시장 상층의 근로시간을 끌어내리고 노동시장 하층의 근로시간을 안정화 하는 일종의 ‘근로시간 압축’(compression of work hours)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주4일제’ 요구는 노동조합이 강하게 조직된 특정 산업에 대한 ‘특수 요구’일 수는 있어도, 노동조합운동을 관통하는 ‘보편 요구’가 될 수는 없다. 전략전술 수립의 기본은 특수와 보편, 부분과 일반을 잘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근로시간 문제에서 지금은 노동시장 상층만을 위한 ‘특수와 부분’ 전략을 넘어, 하층까지도 아우르는 ‘보편과 일반’ 전략이  필요한 때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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