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회적 대화의 결핍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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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적 대화의 결핍에서 벗어나기

김종진 0 4,031 2018.08.03 12:23
* 이 글은 매월 1회 경향신문의 <세상읽기> 코너에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칼럼의 2018년 8월 3일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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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사회적 대화의 결핍에서 벗어나기

-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 기사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심각성을 언급하고, 방송은 영세자영업자 생존과 존폐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사 모두 최저임금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불참하고, 10.9% 인상이 부당하다며 정부에 이의제기까지 했다. 노동계 또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포함되자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최저임금 논의 과정은 저신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 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사실 협력이란 타인과 함께 상호 이득이 되는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논의는 노사 간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대립된다. 이 때문에 국가는 공동의 과제일수록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거버넌스를 통해 결정해왔다. 특히 노·사·정 3자가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공간이 된다. 이 때문에 논의 의제로는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정책들이 다루어진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최선의 대안적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하는 자본주의 내에서 최적의 규칙을 만들 수는 있다. 독일은 2002년 사회적 대화에서 직업훈련을 받지 않은 청년실업자, 초과노동의 축소,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한, 신기술과 혁신지원을 위한 사회투자 등을 논의했다. 우리도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출범한 것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 대표가 사회적 협약을 체결(1998·2·6)했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심각해졌다. 무엇보다 산업구조조정과 비정규직 고용 등 노동시장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당시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뚜렷한 해법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은 많다. 물론 출산휴가 확대나 교원과 공무원의 단결권 보장과 같은 노동기본권이 한 단계 신장된 시점이기도 하다. 그나마 의미 있는 논의는 주5일제 시행과 같은 노동시간 단축 합의였다. 시간이 흘러 올해 7월 조직 명칭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기업 내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은 일상화되었다. 일터에서 쫓겨난 자들은 치킨, 피자, 편의점 등 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가족과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회사의 ‘갑질’과 같은 비인권적 억압에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협력적 이타주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과거 보수정부 시기에는 정부와 기업이 한편이 되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 사회적 대화기구를 활용했었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 공간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노사 모두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충격적인 사실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인력이 파견 공무원(11명)을 제외하면 전문인력 12명과 지원인력 9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년 예산도 41억원(사업비 33억원) 남짓이라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 미래 노동 의제들까지 논의된다고 하니 그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이타적 협력을 지속시키는 사회적 대화 모델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무엇보다 정부가 지속 가능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이해당사자들에게 참여 동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중앙과 지역의 협력적 노사정 대화 틀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때론 분권적·사회적 대화가 강한 제도적 상호의존성을 발현시킬지도 모른다. 아마도 취약노동자의 사회적 보호 접근성을 높이는 것, 노동시장에서 빈곤과 불안정의 덫 그리고 불편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논의 의제로 시작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022034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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